#햇빛서점

2017.12.19

더 라이브러리 이즈 오픈-다른 나를 걸친 채로 읽기


2017년 10월 15일 드랙퀸 낭독회 더 라이브러리 이즈 오픈(The Library is OPEN)이 열렸다.

첫 순서는 정글(JUNGLE)이 맡았다. 세 명의 어린이를 포함해-우리가 무대 앞에 앉았다. 무대 위 스탠드에는 네 권의 그림책이 놓였다: «꽁치랑 뽀뽀하면 안 된다고?», «원피스를 입은 모리스»,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뱃사람을 기다리며».

정글은 그곳으로 이야기를 불러들였고, 새 책을 열 때마다 변신했다. 양 갈래로 땋은 은발이 유니콘의 뿔처럼 솟아난 할머니였다가, 새빨간 원피스에 새하얀 힐을 신고 나타난 모리스였다가, 머리도 옷처럼 핑크 치마 모양을 한 꽁치였다가, 베레모를 눌러 쓰고 바닷바람을 거스르는 선원이었다. 우리들의 볼에서 빛이 났다.

“나는 꽁치가 너-무 좋아!” - «꽁치랑 뽀뽀하면 안된다고?»

“엘리와 헨리는 모리스를 따라서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별에 발을 디뎠어요. 탐험 중에 모리스는 사각 사각 사각 소리를 내요. 주황색 원피스는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신발은 딸깍 딸깍 딸깍.” - «원피스를 입은 모리스»

“꽁치가 노래를 부릅니다. 관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남자애가 치마를 입었어’ ‘여자야, 남자야?’ ‘쟤 뭐야?’ ‘세상에!’ ‘목소리가 남자애 같아!’ 그때, 큰 소리가 들려옵니다. ‘꽁치야!’ ‘치마 입은 꽁치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 -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마테스와 뱃사람은 길을 나섰습니다. 두 사람이 배를 타러 가는 동안 아침 기운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끼룩! 끼룩!” 갈매기도 같이 갈 모양이었습니다.” - «뱃사람을 기다리며»

해가 지고, 오후 다섯 시, 다음 낭독은 모어(MORE)의 차례였다. 종합 예술인 이랑의 소개로 무대에 오른 모어는 햇빛 총서 제1권 «목사 아들 게이» 말미에 수록된 더즌의 수기 ‹게이 아빠를 둔 목사에게›를 읽었다. 글에서 ‘나’는 목회자인 부모에게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 하기까지의 사연을 고백한다.

“아이러니는 우습고, 종국에는 즐거이 기억된다. 다행히도 나는 아직 신께 올릴 기도를 정하지 못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했다. 나에게 남아 있는 믿음의 크기가 얼마인지 당최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삶을 앞으로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 «목사 아들 게이»

낭독을 마친 모어는 춤추고 노래했다. 그의 몸짓은 ‘나’의 이야기를 응축했다. 우리는 그에 감응했다. 적어도 내 생각엔 그랬다. 나는 기도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기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했다. 마음이 복잡해지고 또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날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정글과 모어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담고서.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낭독이 무슨 효력을 지니는가? 누군가 언젠가 물은 적이 있다. 그날을 떠올리면 이런 답이 가능하다. 가끔 생각이 날 때 우리는 소라 껍데기를 꺼낸다. 그러면 그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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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기록은 닷페이스 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드랙퀸 정글은 위키트리의 기사 ‹“꼭 정해진 성별로만 살아야 하나요?” 여장남자 ‘드랙퀸’ 이야기› 말미에 포함된 인터뷰에서 드랙을 하며 가장 기쁘고 보람찼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 중 하나로 ‘더 라이브러리 이즈 오픈’ 퀴어 동화책 낭독회를 꼽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린 아이들 앞에서 치마 입는 걸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나오는 동화책을 읽었다. 내 앞에 한 남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그 아이도 치마 입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이야기를 시작하니 아이가 눈을 초롱초롱 뜨고 바라봤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그 아이에게 잘 전달되고 있는지 걱정됐다. (...)

그 아이가 자기 정체성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말았으면 했다. 학교에서 놀림받고 괴롭힘당해도 당당히 살아가는 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자기 정체성을 억누르고 살아가면 놀림은 덜 받겠지만 훨씬 불행할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용기를 줬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퀴어 동화책을 읽어준 건 확실히 드랙퀸으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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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진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