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함

2017.10.09

나는 어쩌다 아시아 음악에 빠져버렸나?


이 글은 2017년 9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라이브러리파크 프로그램 ‘木요일의 문화시계’의 한 장으로 박다함이 진행했던 “아시아의 어떤 음악: 나는 왜 아시아 음악에 빠지게 되었는가?”를 재서술한 것이다. 이하 ‘나’는 박다함 자신을 가리키지만 그렇다고 내가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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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박다함. 한국 서울에서 노이즈 뮤지션이자 공연 기획자로 활동하며 인디 레이블 헬리콥터 레코즈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아시아 지역의 음악가, 기획자, 수집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다양한 음악을 발굴하고 소개해왔다. 나는 여기서 그 길지 않은 역사에 대해 정리해보려 한다. 일본에서 출발해 대만,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음악까지 관심을 뻗쳐나간 경로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다.


   물음표→아시아 음악에 대한 의문 

2010년대 초 아시아와 중동 음악이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지형적·시대적 맥락을 깊이 있게 다루는 흐름은 아니었고, 특이한 음악이 있다고 소개하는 정도였다.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뚜렷하게 파악할 순 없다. 다만 점들이 여러 개 있었을 뿐이다. 디제이 마프트 사이(DJ Maft Sai)가 주드렁마 레코즈(Zudrangma Records)에서 태국 펑크 음악 컴필레이션 앨범 ‹Thai Funk Volume 1›을 발매하면서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음악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영미권에서는 파티 음악으로 많이 소비됐다.

영국 레이블 파인더스 키퍼스(Finders Keepers)는 아시아와 중동의 음악을 소개했다. 미국 포틀랜드에 위치한 미시시피 레코즈(Mississippi Records)는 리듬 앤드 블루스나 미국 전통 음악을 수집하는 것으로 시작해 아시아 음악까지 관심이 뻗어 나간 경우다. 서브라임 프리퀀시(Sublime Frequencies)는 중동, 아프리카, 베트남, 인도 등 다양한 지역의 음악을 소개했다. 조선도 끼여 있었는데, ‹Radio Pyongyang›이라는 북한 앨범으로 지금은 절판돼 구할 수 없다. 이곳은 시리아 출신 뮤지션 오마르 솔레이만(Omar Souleyman)이 처음 앨범을 릴리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미권 중심의 이러한 아시아 음악 소비 경향을 바라보며, 몇 개의 물음표가 떠올랐다. 왜 아시아 사람들은 아시아 음악을 듣지 않을까? 자국 음악이 별난 층위로 소개되어 위상이 변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 시리아의 한 웨딩 파티에서 노래 부르는 오마르 솔레이만과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기념 공연을 하는 오마르 솔레이만 사이의 거리감이란….

그러는 내게도 계기라는 것이 생겼다. 2013년 도쿄 ‘하이티’에서 열린 ‘세계우주음악친구’라는 파티에 우연히 참석했다가, 아시아에도 아시아 음악을 집중적으로 파는 사람들이 (물론) 존재한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날 밤 소이 48(Soi 48)과 키시노 유이치(Kishino Yuichi)를 포함해 많은 이들과 아시아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영감을 받았다.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아시아의 음악들을 잘 소개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랬던 것 같다.


   연결 고리→비슷한 사람들과의 만남 

아시아 음악에 대해 관심이 생기던 차에 또 다른 접점들도 발견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나와 비슷한 식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음악을 소개하는 여러 가지 창구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처음엔 공연을 만들었고, 다음엔 레이블을 열었다. 그 중간에는 공연장을 운영했다. 말하자면 음악을 소개하는 방법에 대한 단계적인 시도였다.

2년간 이어갔던 공연장을 불가피한 사유로 중단하고 다음을 고민하던 중, 거의 흡사한 상황 아래 활동을 지속하는 공연장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홍콩의 ‘히든 어젠다(Hidden Agenda)’라는 공간이었다. 2014년 홍콩에서는 민주화 운동에 부쳐 도심 점거 운동(Occupy Central), 우산 혁명(Umbrella Revolution) 등 여러 움직임이 있었다. 히든 어젠다도 그와 궤를 같이했다. 여러 번의 강제 철거 위기를 극복하면서 시의적인 사회 문제들에 직접적으로 관여했고, 그것을 가시적으로 드러냈다. 영화 ‹HIDDEN AGENDA The Movie›는 이곳의 발자취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히든 어젠다를 통해서 연결된 창구가 하나 더 있다. 야마모토 카나코(Yamamoto Kanako)가 운영하는 일인 기관 ‘오프쇼어(Offshore)’. 아시아 예술과 문화를 다루는 일종의 인터뷰 웹진이다. 히든 어젠다 운영자들이 여기에 와서 토크 이벤트를 열고 다큐멘터리도 상영한다는 소식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나는 그걸 듣고 홍대 칼국수집 두리반에서의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파티51›이 떠올랐다. 같이 상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문의했더니, 오프쇼어 측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공간이나 기관과 접촉하는 데 도움을 줬다. 2015년, 그렇게 일본 투어를 하게 됐다.

오프쇼어라는 공통분모가 생긴 계기는 홍콩의 히든 어젠다이고, 또 히든 어젠다는 앞서 얘기한 도쿄의 하이티 친구들이 활동했던 공간이기도 하다. 뜻밖으로 얻은 게 있다면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네트워크가 아닐까 싶다. 그 뒤로는 이를 아시아 음악과 엮어 어떻게 함께 소개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한 번에 정리하지 못해서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하나씩 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해법→아시안 뮤직 파티의 탄생 

형식은 자연스레 파티(party)가 됐다. 2015년 ‘페스티벌 봄’을 통해 처음으로 아시안 뮤직 파티를 시작했다. 나는 먼저 태국 음악을 플레이 하는 일본의 2인조 디제이 Soi 48을 초대했다. 이 둘은 원래 테크노나 클럽 댄스 음악을 즐겨 들었는데, 태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택시 안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음악에 빠져버려 그 길로 비슷한 음악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태국의 ‘뽕짝’이라고 할 수 있는, 모람(molam) 혹은 룩퉁(luk thung)이라는 장르의 음악이었다. 모람과 룩퉁을 트는 디제이 듀오는 흔치 않다. 그들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다. “우리 같은 팀은 일본에 우리뿐이고 세계에도 거의 없다.”(동아일보 인터뷰)

아시아 국가들은 한자 문화권 안에 있고 엇비슷한 역사나 문화를 공유하지만, 언어를 모르고서야 타국 음악을 이해하긴 힘들다. Soi 48 역시 언어의 장벽을 겪었다. 처음엔 태국어로 ‘음반을 사려면 어디로 가나요?’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돌아다녔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집에 있던 테이프를 갖고 오기 시작했다(NHK 취재 방송). 최근엔 그간 태국에 가서 앨범을 모으고 뮤지션을 만나는 여정을 집대성해 «TRIP TO ISAN»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발간했다. 책의 트레일러 영상만 봐도 지금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잘 알 수 있다. 이제 그들은 수준급의 태국어 실력까지 갖추고 한국으로 치면 김추자나 김정미 같은 뮤지션의 앨범을 발굴한다.

첫 번째 아시안 뮤직 파티의 라인업을 보면, 하세가와 요헤이(Hasegawa Yohei)와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가 있다. 하세가와 요헤이의 경우 신중현과 산울림의 음악에 매료되어 한국 음반을 사려고 처음 한국에 왔다. DJ Soulscape는 한국의 예전 음악을 모아 ‹더 사운드 오브 서울(the sound of seoul)›이라는 믹스 시디를 낸 적이 있다. 이렇게 취향의 스펙트럼이 확장되고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디제이 플레이를 같이하면 어떨까 싶었다.

두 번째 파티에는 한국 레게 음악을 파는 영몬드 씨와 아시아 음악을 폭넓게 파는 용녀 씨를 불렀다. 그 뒤로도 아시안 뮤직 파티는 아시아 음악을 수집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식으로 진행했다. 오는 10월 하이파이브에서 진행할 네 번째 아시안 뮤직 파티에는 대만 음악을 수집하는 일본의 삼인조 디제이 키시노 유이치·히데키 야치·사카타 리츠코와 삼인조 경음악 밴드 해초자매, 그리고 영등포의 로파이 부기 마법사 모과를 초대했다.

동시에 헬리콥터 레코즈를 통해 앨범을 만들어 판매했다. Soi 48을 초청했을 땐 한국 버전 믹스 시디를 발매하자고 제안했다. 올해엔 하세가와 요헤이가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지를 돌며 수집한 음악을 엮은 믹스 테이프 ‹Groovy Flowers Of Asia›를 냈다. 이번에는 키시노 유이치·히데키 야치·사카타 리츠코가 대만에 가서 발굴한 음악을 엮은 ‹A Night In Taipei›라는 믹스 시디를 테이프로 재발매하려 한다. 그때그때 상황과 분위기에 적합한 소개 방식이 무엇일지 많이 고민하고 있다.


   엉킨 실타래→아시아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 

한번은 한국에 아시아 음악을 소개하는 사람으로서 한아세안센터 청년 워크숍 애프터 파티의 디제이로 초대된 적이 있다. 아세안 국가라고 하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필리핀, 싱가포르, 브루나이, 미얀마인데, 내 라이브러리엔 이들 국가의 음악이 많지 않아 고민이 됐다. 그래서 미리 학생들 각각에게 유행하는 음악이나 소개하고 싶은 음악을 골라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결과가 매우 흥미로웠다. 학생들이 골라온 음악들을 연이어 재생하니, 경제·문화·사회적 격차가 확연히 드러나는 지점들이 느껴졌다.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은 전통에 가까운 색을 가지고 있었다. 부탄이나 베트남은 오래된 곡들이 아직까지 유행했다. 싱가폴의 경우 현대 음악을 나름대로 소화한 댄스 음악이 존재했다. 필리핀 음악은 팝에 가까웠다. 그것들을 한 자리에서 트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뭐라고 판단하긴 이르지만, 이런 차이를 직면하는 것이 아시아 음악에 가까이 다가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은 마지막으로 케이팝을 요청했다. 그날 우리는 원더걸스와 투애니원으로 하나가 됐다.

매거진 «GQ» 2017년 8월호에 서울, 타이베이, 도쿄의 인디 신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 ‘아시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실렸다. 나는 서울의 매력적인 장소들을 추천하며 짧막한 질의응답에 응했는데, 그중 아시아성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아시아성이라는 걸 말하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답했다. 아시아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도 종종 ‘아시아 음악의 전형성이 무엇인가요?’ 하는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아직 그에 대한 인식이 잔뜩 뒤엉켜 있기 때문에 정돈된 답변을 기대하는 이에겐 실망을 줄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나는 그 혼란스러운 상태를 보는 것이 좋다. 가령, 한국 음악의 타임라인을 파악하고 있는 이가 케이팝 믹스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SM과 JYP 중심의 믹스나 90년대 주요 음반을 정리하는 컴필레이션을 낼 가능성이 높다. 반면, 같은 걸 말레이시아 리스너가 만드는 경우, 어떤 흐름에서 뚝 떨어져 나와 독특한 취향으로 엮인 결과물을 기대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그걸 보고 레시피를 대충 흉내 낸 정통성 없는 음식 같다고 평가하겠지만, 그런 오해에서 출발한 궁금증이 더 재미있는 지점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또, 그런 걸 기대한다. 언젠가는 엉킨 실타래가 한 올씩 풀리는 순간이 다가올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