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목장세미

2017.09.26

헨과 숨은 별미의 고수들


지나간 밤을 어떻게 말할 수 있나. 이 글은 2017년 8월 13일 소목장 세미 쇼룸에서 열린 ‘숨은 별미의 고수: 헨키친’을 함께한 사람들의 말과 기억을 재구성한 결과다.



   어두운 밤을 향해 

헨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때가 언제인지는 불명확하다. 다만 그가 그린 만화를 통해 그를 만난 일을 기억한다. ‘헨지스’ 팝업 키친 이벤트를 알리는 플라이어였을 것이다. 그날의 요리와 두 요리사가 그려진 정직하고 반듯한 메뉴판 이미지. 재밌는 말도 적혀 있었나. 나는 그냥 그걸 보고 있는 게 좋았다. 정작 음식 먹으러 간 적은 한 번도 없으면서. 왜 그랬을까? 이제 와서 내게 묻고 싶다. 물론 그 뒤로도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작년 여름엔 헨키친 고별전이 있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프랑스의 요리 학교로 공부하러 떠난다는 말을 들었다. 영영 끝인가 보다 했지. 게으른 사람은 남보다 열심히 후회하잖아. 그땐 이런 뜻밖의 상황을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요리 수업과 레스토랑 인턴십을 마치고 잠시 귀국한 헨을 소목장 세미가 붙잡고, 하이파이브를 통해 이벤트를 열게 될 줄은. 우리 회장님께서 햇반 돌려 먹을 시절부터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가끔 아름답다.


   흔들흔들 커튼 사이로 

환한 밤. 조금 늦게 도착했다. 쇼윈도 너머 커튼 사이로 뭔가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문을 여니 몇몇이 나를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서 긴장이 확 풀려버렸고, 그러자 쇼룸의 전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푸른 카펫 위 모양이 제각각인 테이블들과 그 주위에 둘씩 둘러앉은 사람들. 부드러운 살갗의 목재 가구와 차분한 조명이 묘한 공기를 만들어냈다. 안전하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에피타이저가 막 나오던 참이었다. 나는 그게 뭔지 보려고 애썼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눴다. 음악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다음에 나올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건너 테이블과도 한두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모두가 행복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런 영화는 없겠지. 그런데 나는 왜 여기 있지…? 거대 안마 의자 ‘쿠룬타 1세’ 옆에 쭈그려 앉아 있던 나는 순간 땀이 났고 그제야 카메라를 꺼내 여기저기를 찍기 시작했다. 소목장 세미는 서빙을 하며 요리에 대해 설명했다. 주방에서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가 시작되고 우리는  

1부: 두 종류의 아뮈즈부슈가 화면에 가득 찬다. 줌아웃. 한 사람이 얇게 잘라 구운 식빵 사이에 홍게살과 풋사과와 영양 부추를 얹은 것에 입술을 가져간다. 왜인지 콧바람을 흥 내뱉는다. (죽기 전에 한 번만 더 먹을 수 있을까?) 그러자 맞은편 사람이 계란 노른자와 미소 된장과 피스타치오를 섞은 다음 굳혀 표고버섯 사이에 얹은 것을 삼킨다. 그는 골똘히 고민에 빠진다. (세상에… 내가 대체 뭘 먹은 거지?) 암전.

2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두 사람 앞에 다시 접시가 놓인다. 문어 샐러드다. 그러니까 다양한 녹색 채소와 문어가 있고, 그 위를 정체 불명의 소스가 덮는다. 둘은 와인 잔을 부딪히고 포크를 든다. 둘의 입가가 살짝 움찔거린다. (정말 모르겠어요…) (혀에 걸리는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이 소스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너무 상큼하고 쫀득해요.) 이미 비어 있는 접시에 자꾸 포크를 가져가는 둘. 암전.

3부: 어느덧 절정이다. 감자 뇨끼 위에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가 올라간 하얀 접시. 화면은 둘의 모습을 비추지 못한다. 왜냐하면 둘은 작은 사람이 되어 이미 접시 안으로 몸을 던졌기 때문이다. 화면은 오로지 접시 위의 오리 가슴살과 감자 뇨끼에 초점을 맞춘다. 사진을 보는 듯하지만 요리는 아주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오백 시간이 흐르고, 빈 접시. 암전.

4부: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우리의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모든 끝은 같지 않다. 디저트는 체리와 머랭과 바닐라 아이스크림, 그리고 유머. 두 사람은 나무 보울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다 서로 머리를 꽝 부딪힌다. (어머, 이마에서 피가 나요.) (아, 이거요? 체리예요.) 줌아웃. 줌아웃. 줌아웃. 암전.


   산책하고 산책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쇼룸에서 행사를 준비한 이들과 남은 음식을 먹었다. 헨은 조리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한 번에 몇 인분의 음식을 낼 수 있을지, 서비스에 시간적인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 걱정이었는데 이도진과 민의 도움으로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고 했다. 또 와인을 곁들이는 저녁 식사였던 만큼 그에 걸맞는 분위기를 내고 싶었는데 소목장 세미가 조명부터 테이블까지 완벽히 준비해줬다고 했다. 우리가 이런 말을 했던가?

우리는 사는 게 일하는 게 힘들다는 얘기를 했다. 몸 아픈 얘기도 하고. 나는 계속 표고버섯 아뮈즈부슈를 떠올렸다. 그리고 오리 고기가 자꾸 입에 들어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기억을 공유하는 게 뭘까. 느닷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는 걸까. 그럼 뭘 같이 먹는 거네. 뭘 같이 만들고 앉아서 먹는 거 아닌가. 그날 나는 막차를 놓쳐 택시를 탔는데, 택시가 너무 빨리 달려 겁이 났다. 이십 분도 안 걸려 도착해서는 주변이 너무 깜깜해 어리둥절했다.


   바다에서 만난다 

헨: 그날의 메뉴는 제가 파리에 와서 먹어본 요리들, 혹은 배운 요리들이에요.

헨: 일하던 곳이 파리의 어느 호텔 안에 있는 투스타 미슐랭 레스토랑이었어요. 그곳 셰프의 (지금은 돌아가신) 스승이 만든 오리 요리가 있었는데요. 다섯 가지 향신료를 캐러멜라이즈한 꿀과 섞어 만든 소스를 곁들인 오리 가슴살 요리였는데, 처음 맛봤을 때 이 맛을 꼭 친구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일 서비스 중 홀에 나가 사람들에게 식사가 어땠냐고 물었을 때, 맛있는 걸 먹을 때 나오는 그 얼굴들을 볼 수 있어서 저도 정말 기뻤어요.

헨: 코스를 준비하는 데 시간도 일손도 정말 정말 많이 들어서, 지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을 시작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헨키친을 하자는 연락이 왔을 때 망설이기도 했어요. 혜미 씨, 도진 씨, 민 씨와 주변 친구들이 두 팔 걷고 나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제대로 끝내지 못했을 거예요.

헨: 예전에 헨키친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들, 제가 음식을 파는 이벤트를 열 때마다 와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식사가 시작되고,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와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니 굉장히 기쁘고 뿌듯했어요.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요. 앞으로 오랫동안 기억할 순간을 하나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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