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서점

2017.09.06

햇빛 조정 시간-박철희와의 대화


작년에 작가 금정연이 햇빛서점 운영자 박철희를 인터뷰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걸 정리해 단행본으로 엮는 것이 내 일이었으므로 마냥 듣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는데 어쩐지 마냥 듣고 앉아 있게 됐다. 여름밤인데 분위기가 참 포근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는 금정연의 질문에 박철희는 “누추한 곳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웃겨서 나중에 꼭 써먹어야지 생각했다. 뒷정리를 하고 같이 담배를 피우는데 박철희는 대뜸 인터뷰하는 게 지겨워 죽겠다고 했다. 마음속 웃음샘 홍수 나는 소리.(쑥스러워서 대놓고 못 웃음)

그리고는 양해를 구하고 책을 고른 뒤 «FIERCE PUSSY»를 샀고 박철희가 동네 친구들과 드랙 하는 걸 구경하다가 집에 갔다. 딱 일 년 뒤인 2017년 8월 2일 퇴근 시간 우리는 다시 만났다. 이태원 클럽들 사이를 지나 언덕을 올라 이슬람 사원을 끼고 골목길을 따라 쭉. 햇빛서점에는 빨간 등이 켜져 있었다. 또 밤에 와버렸네.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기엔 밤이 좋긴 하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박철희가 왔다. 하이파이브니 프로젝트니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그간의 근황이 궁금했다. 어색하게 여러 번 웃다보니 또 금방 편해졌다.


*****


Q: 진부한 질문이겠지만, 자기소개를 한다면?

철희: 2014년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길을 가고자 작정하던 와중에 이도진이라는 사람을 만나 뒤늦게 제 자신을 게이로 정체화 했어요. 응축돼 있던 디나이얼의 삶에서 벗어나면서 폭발적으로(웃음) 뭔가를 하게 된 케이스 같아요. 그래서 ‘스튜디오를 차리자’와 ‘서점을 차리자’라는 생각을 동시에.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는 배운 걸 써먹고 돈을 벌기 위해 해야 했고, 서점은 우리나라에 이런 공간이 생기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 하고 싶었고. 같이 일하는 디자이너 박지성 씨가 괜찮다고 해서 스튜디오 한쪽에 서점을 마련했죠. 그래서 이름도 ‘햇빛’으로 맞춘 거예요. 현재 ‘햇빛스튜디오’와 ‘햇빛서점’을 동시에, 잘하지도 못하면서 하고 있는,(웃음) 그런 사람이에요.

Q: 생각해보니까 딱 이맘 때 «탐방서점» 행사를 했잖아요. 저쪽에 앉아서 들었던 기억이 나요. 끝나고 철희 씨랑 얘기하는데, 인터뷰 너무 많이 해서 지겹다고.(웃음)

철희: 아, 맞아요, 맞아요. 지금도 그래요.

Q: 지금도요?

철희: 네, 대학생들이 진짜 많이 찾아오고, 관심이 많아요. 이슈가 된다는 건 저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꾸준히… 한 30번 했을걸요? 요즘에는 거절도 많이 해요. 일단 “인터뷰한 게 인터넷에 있으니 보고 와라”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됐어요. 왜냐하면, 아무리 잡지에 실린다고 해도 돈을 안 주잖아요. 문제예요. 그리고 요즘 제가 서점에 자신이 없어요. 서점에 대해 말하고 나면 자괴감이 들고. 그래서 솔직하게 안 하고 싶다고 말해요.(웃음) 침체기라고 생각하는데, 좀 애매해요. 인터뷰 요청을 받는 게 사실 좋은 일이긴 한데.

Q: 저라도 그럴 것 같아요. 인터뷰라는 게 시간도 들고 에너지도 드는 일이니까.

철희: 사례금 수준으로도 안 주는 게 화딱지 나고.(웃음)

Q: 오기 전에 다른 인터뷰 찾아봤는데, 그것들 보면 서점에 대한 궁금증을 많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철희: 오늘은,(웃음) 모든 질문에 답을 열심히 할 겁니다.


   둘 사이의 케미스트리 

Q: 열심히 하지 맙시다.(웃음) 그리고 제가 말을 잘 못하고 중간에 흐름이 뚝뚝 끊겨도 이해해주세요. 저도 인터뷰가 어려워요. 무슨 얘길 하고 있었죠?

철희: 제 소개를 하고 있었는데… 아, 그리고 처음에는 서점을 취미로 시작했다는 것을 강조했는데, 요즘은 달라졌어요. 그렇게 말하는 게 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탐방서점»에서는 제가 서점을 무조건 취미로 할 거고, 그걸 지켜야만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을 거예요. 얼마 전에 장사하는 사람이 하는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하면 안될 거래요. 평소 같으면 무시할 법한 말이었는데 와닿았어요. 서점도 잘 운영하려면 하루 종일 일해도 모자라고, 적어도 8시간 정도는 투자해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거든요. ‘하이파이브’를 계기로 열심히 해야겠구나 싶어요.

Q: 생각보다 일이 엄청 많잖아요.

철희: 디자인은 맨날 밤새우고, 해도 해도 부족한 일이라서 두 일의 케미가 안 맞지 않나.(웃음) 처음에는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이니까 괜찮겠지 생각했어요. 근데 책을 돌리는 데도, 서점 가꾸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고.

Q: 그렇겠네요… 서점 하시는 몇몇 분들 얘기 들어보면 디자인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서 많이 답답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는 완전 좋네요. 행사 포스터 매번 너무 재밌어요.

철희: 그렇죠. 시작할 때는 제 디자인 커리어에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디자이너의 실험성 같은 걸 과시하기 위해서 개인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그럴 필요 없이 서점 작업을 내 맘대로 하면 되니까 여기서 펼쳐봐야겠다는 생각도 좀 했죠.(웃음)

Q: 지나고 보니 그건 좀 어때요?

철희: 실제로 그러고 있기도 한데, 제가 디자인에 진중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라서. 그래도 햇빛서점 관련 디자인 작업을 할 때마다 좋아요. 재밌게 하고 있어요.

Q: 가끔 ‘이건 철희 씨 거구나’ 하는 것도 있어요. 그만큼 눈에 잘 띄고. 전시에도 여러 번 참여했죠?

철희: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바벨»이랑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로터스 랜드»인데, 광주 전시에서는 ‘햇빛모직’이라는 원단을 만들었어요.(웃음) 삶의 원재료가 되는 것들을 만들면 햇빛서점의 메시지가 기본적으로 일상에 섞여 들어간다고 생각해서요. 원단은 제가 만들기 쉽기도 하고. 그게 햇빛모직 라인의 첫 번째 원단이에요. 아, 이번에 그걸 해봐도 재밌겠다. 곧 전시 끝나서 천을 다시 돌려받는데, 그걸 자르든지 어떻게 해서 파는 거예요. 무슨 얘기하다가 이렇게 됐지?

Q: 모르겠어요.(웃음) 아, 도진 씨랑 인터뷰하다가 슬쩍 나온 말인데, 게이 잡지 만들 거라는 말로 꼬드겨서 연애 시작했다고. 그 얘기 들려줄 수 있나요? 두 버전 다 들어봐야 할 것 같아서.(웃음)

철희: 아하하. 혹시 미화된 부분이 있을까 봐? 그 당시에 제가 한창 힘들어하고 있었어요.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사춘기도 딱히 안 겪고 되게 성욕이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그게 26~27살 때 폭발해버린 거예요. 애인을 만들고 싶어서 여자 친구를 만났는데, 지금 생각하면 상대가 여성이어서 제가 로보트처럼 행동했던 것 같아요. 너무 불편해 보인다는 말도 듣고. 책으로 배운 것처럼 연애를 흉내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평소에 인터넷으로 게이 포르노를 검색한다거나, 관심이 가는 친구들이 있다거나, 스스로를 게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이지 항상 게이 짓은 하고 있었거든요. 저를 너무 모르고 또 회피하는 상태였는데, 그 만남이 잘 안되고 나서 너무 괴로웠어요. 어떻게 보면 ‘정상적으로’ 살아보려는 발버둥이었는데, 그게 수포로 돌아가니까 좌절감에 빠진 거죠.

그때 마침 어떤 분이 자기가 만드는 잡지에 코너 하나를 맡아달라고 제안했고, 그 작업에서 도진 씨를 만나게 됐어요. 저를 약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채팅도 많이 하고 일부러 찾아오고. 잡지 이야기는 썸 타던 중 에피소드인데, 앞으로 뭘 할 거냐고 물으니까 “게이 잡지 만들고 싶다” 딱 말하는 거예요. 자기가 게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래서 질러버리듯이 “저도 시켜주세요”라고 말했죠. 도진 씨도 제가 게이인 걸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알게 됐고,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는데, 제 마음 상태가 완전히 다른 거예요.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신기해서 친구들한테 저 게이라고 다 말하고 다녔어요, 부모님한테는 안 했지만. 되게 신이 나는 그 에너지가 대단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도진 씨 통해서 외국 서적이나 자료들을 많이 접했는데, 외국에 나갈 형편이 안 되니 인터넷으로 볼 수밖에 없어서 되게 답답한 거예요.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 것 같아요. 여태까지 못 봤던 걸. 그래서 서점을 열게 된 것 같아요.(웃음)

Q: 아름답네요.(웃음)

철희: 맞아요. 되게 소중한 만남이에요. 둘이 너무 다른 사람이어서 아직까지 난항을 겪고 있지만.

Q: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다는 얘기도 했어요. 도진 씨는 친구들과 협업하는 걸 좋아하고, 철희 씨는 혼자 하는 걸 편하게 여긴다고.

철희: 맞아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잘 안되고. 사실 그렇게 생각한 지도 얼마 안 됐어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고, 이렇게 해야만 뭘 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되게 독단적이고 혼자가 아니면 마음이 편하지 않거든요.

Q: 나쁜 건 아니잖아요.

제가 그렇게 되는 걸 원하진 않아서요. 도진 씨에게 상처가 된 적도 있고. 그런 걸 좀 고쳐보고자 최근엔 상담을 받고 있어요. 4달 정도 됐는데 좋은 깨달음을 많이 얻고 있어요. 제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너무 맞춰주려고 하기 때문이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하기보다는 상대가 뭘 원할지 자꾸 신경 써서 깊게 다가가지 못하고, 결국 겉돌고. 헤어지는 거 되게 잘하거든요. 정이 없어요. 고치려고요.


   신이 나는 기분 기분 에너지! 

Q: 게이라는 걸 깨닫고 나서 폭발한 에너지가 디자인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철희: 디자이너로서도 되게 달라진 것 같아요. 뭐랄까, 제 내면의 목소리,(웃음) 그걸 듣기 시작했다고 해야 되나. 더 솔직해졌다고 말하면 좋을 것 같아요. 작업물을 봐도 형태적으로 차이가 많이 나요. 예전에는 >노가다< 같은 작업을 많이 했거든요. 엄청 우울하게. 이런 거 하면 사람 안 만나고 모니터 앞에만 있으면 되고 시간 때우기 좋다고 생각하면서. 30만 원짜리 포스터 한 장 만드는데 며칠 밤을 새워서 나열하고… 그것 때문에 저를 좋아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 악순환의 결과가 되게 좋은 거예요. 우울한 기운으로, 노가다 작업을 하는데, 반응이 또 좋고. 지금은 그런 걸 하기 싫어졌죠.

Q: 작년이었나? ‘EXis’ 포스터 작업 엄청 노가다잖아요.(웃음)

철희: 아 그건,(웃음) 아이디어 회의 결과가 그렇게 나왔어요. 그것도 노가다구나. 완전 여태까지 한 것 중에 제일 노가다네.(웃음) 가끔 그런 걸 할 때도 있지만, 흐름을 보자면 바뀌었어요.

Q: 현재 본인 작업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을 말해줄 수 있나요?

철희: 요즘은 설명이 필요 없도록 디자인하는 걸 많이 좋아해요. 직관적인 표현 같은 것. 사랑에 관한 포스터? 그럼 하트. 이런 식으로 뻔뻔하게 하는 걸 제 트레이드 마크로 삼아볼까 하고 있어요.(웃음) 예전에 디자인 공부할 때는 개념적인 디자인이 유행했어요. 로고 하나에도 엄청난 뜻이 담겨 있다거나, 포스터에 철학적인 의미가 숨어 있다거나. 그런 걸 항상 거북하게 생각하면서 안 하려다 보니까 이렇게 된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가끔씩 직관적이고 뻔뻔한 것만 만들다 보면 멍청해지는 거 아닐까 생각도 들어요.

Q: >현자타임< ?

네.(웃음) 즐겁긴 한데 걱정도 되고. 사실 나중에 글쓰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거든요. 어떤 예술가의 생각이 담긴 ‘조형예술론’이라든지, «점. 선. 면» 같은 책을 진짜 좋아해요. 디자이너로서 가지고 있는 철학을 에세이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는 싶은데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Q: 드랙은 어떻게 시작했어요? 드랙 하고 나서 변한 점도 있나요?

철희: 넷플릭스에서 ‹루폴의 드랙 레이스›를 봤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드랙을 알고는 있었지만, 퀴퍼 때 한번 해볼까 생각하니 두근두근했어요. 보통 일이 아니라서 두 달 전부터 준비했는데 역시나 좋았어요. 돈이 많이 들었지만… 저는 드랙을 하면 변화가 있을 줄 알았거든요. 외향도 달라지고, 힐 신으니까 키도 커지고. 제 애티튜드도 바뀔 거 같아서 변신하는 효과를 기대했죠. 근데 제 모습 그대로더라고요. 막 입 가리고 웃고 있고.(웃음) 쇼잉(showing)이 잘될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노력해야 되는 거였어요. 세게 말하거나 그런 것도.

Q: 어떤 점이 재밌어요?

철희: 워크숍 할 때도 그렇고 일단 여러 명이 모여서 하잖아요. 화장할 때 손은 바쁘더라도 입이 트여 있고, 거울을 보고 있으니 괜히 진솔한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웃긴 얘기도 많이 하게 되고. 대화가 너무 재밌어요. 두세 시간 화장을 하면서 사람들이랑 얘기하는 게.(웃음) 원래 대화하는 걸 안 좋아하는데, 왠지 드랙 할 땐 너무 좋아요.

Q: 신기하다.(웃음)

철희: 그리고 드랙 워크숍에 참여하는 이성애자 여성의 마음가짐과 게이 남성의 마음가짐이 되게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게이 남성은 자기가 부끄럽게 여겨왔던 여성성을 과장해서 표출하고, 끼도 맘대로 부리고, 그런 데서 굉장한 쾌감을 얻더라고요. 이성애자 여성의 경우 강요받는 화장법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대로 함으로써 얻는 쾌감 같은 게 있나 봐요. 아껴 쓰던 아이섀도를 팍팍 찍어 쓰는 것도 통쾌하고. 남들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는 것도 즐기고. 그래서 세게 하려는 것 같아요. 마냥 예쁘게만 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런 부분에서 되게 좋아요. 약간 테라피 같아.

Q: 저도 내년에는 꼭 해보고 싶어요. 트위터에서 봤는데 이미 마감했더라고요.

철희: 신청이 그렇게 빨리 끝날 줄 몰랐어요.(웃음) 돈도 많이 들고, 고민이 필요한 일이잖아요. 퀴퍼에서 같이 행진하는 게 목표인데.

Q: 사진으로 보면 철희 씨가 되게 독보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레퍼런스가 있나요?

철희: 외국에서 드랙의 흐름을 살펴보면, 미인 대회(pageant) 계열이 있고, 호러(horror) 화장을 하는 드랙퀸들이 있고, 웃기게(comedy) 화장하는 드랙퀸들이 있고, 약간 망가진(distorted) 쪽이 있는데, 제가 그런 걸 좋아하나 봐요. 엄청 잘 망가지진 못하지만 그런 계열이 좋아요. 흔히 예쁘다고 여기는 지점과는 좀 반대에 있는 이상하고 기괴한 아름다움? 이번 퀴퍼 때 제 레퍼런스가… 진짜 미친 사람인데… 이름을 까먹은 거 같아.(@sadsalvia, @isshehungry) 그런데 저도 평범한 드랙으로 시작했듯이, 이번 워크숍에 참여하신 분들은 일단 드랙퀸이라는 큰 덩어리를 흉내내는 정도가 된 거 같고, 혹시 또 하게 되면 제 길을 찾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일단 처음에는 너무 할 게 많기 때문에.

Q: 워크숍에서는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가이드를 해준 거예요?

철희: 저도 같이 한다는 마음으로 했는데, 중간중간에 모어(more) 씨나 화장을 잘하는 ‘서울메탈’ 조유리 씨가 도와줬어요. ‘밀리언아카이브’라고 하는 빈티지 원피스 숍을 운영하는 친구한테 잘 안 팔리는, 무지막지하게 화려한 빈티지 원피스를 좀 모아달라고 부탁해가지고 가서 골라보고. 가발 가게와 협업해서 가서 착용해보고. 단계마다 뭘 하면 되는지를 알려주고 다른 건 다 자유롭게. 모여서 화장 연습하는 시간으로 썼어요.

Q: 끝나고 엄청 뿌듯했을 것 같아요.

철희: 중간에 못 오는 사람들한테 뭐라고 했어요. 왜 말도 없이 안 오냐고. 생각해보니까 너무 욕심부린 것 같더라고요. 어차피 사정도 있고, 워크숍이 그냥 워크숍이지. 나중에는 욕심을 버렸었는데, 퀴퍼 날 보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보람이 물밀듯이 몰려왔어요. 사람들이 걷는 거 보니까 되게 좋았어요.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Q: 서점 문 연 지 햇수로 2년 차죠? 앞서 힘든 상태라고 했는데, 2년 간 운영한 소회가 어때요?

철희: 일단 서점에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생각이…(웃음) 중간에 한 번 쉬었잖아요. 그리고 돈이 없어서 디자인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을 덜 쏟게 됐어요. 처음 열었을 땐 월급을 받고 있어서 한 달에 50만 원 정도는 남았거든요. 수익이 안 나더라도 그걸로 서점 운영을 했는데, 지금은 디자인 일로 먹고살기 바쁘다고 해야 되나. 밤새우는 경우도 많고, 일이 없는 날이 있다 한들 그저 쉬고 싶은 거예요. 그런 식으로 계속… 뭐가 맘에 안 드냐면, 컬렉션에 변화를 못 주고 있어요. 책들은 막 저렇게 잘못 세워둬서 표지가 말려 있고.(웃음) 짜증이 나요. 보여주기도 싫고 손님도 안 왔으면 좋겠고. 책을 많이 들여오면 되는데, 정산해줄 걱정부터 들죠. 사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근데 도진 씨나 주변 사람들 얘기도 그렇고, 스스로도 아직 그만두기는 아쉬워서 조금 더 노력해보려고요.

Q: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네요.

철희: 네, 북 코디네이터가 절실합니다. 제보 부탁드려요. 북소사이어티에서 일하는 아람 씨 아세요? 저는 그분 참 좋은데. 이런 데 관심도 많으시고.

Q: 아람 씨는 전문가니까.

철희: 장난 아니죠. 책도 진짜 많이 읽고. 일단 저는 서점 주인인데 책을 잘 안 읽는다는 게 가장 문제인 거 같습니다.(웃음)

Q: 긍정적인 기운을 받으면 좋겠네요. 예전에 서점이 커뮤니티가 되면 좋겠다고 했잖아요. 사람들이 모이고 그 사람들 사이에 연결 고리가 생기고. 그런 지점에서는 많은 일을 했죠?

철희: 맞아요. 이번에 진행한 ‘햇빛학교’가 가장 잘한 일인 것 같아요. 그 전에는 ‘고추그림콘테스트’랑 이우인 작가 사인회. 고추그림콘테스트는 인터넷으로 사람들에게 고추 그림을 받은 뒤, 1등을 뽑아 굿즈로 만드는 프로젝트였어요. ‘게이들아, 눈치 보지 말고 고추를 맘껏 좋아하자!’가 모토였지만 대회를 열고 난 후 페미니즘적인 비판을 좀 들었어요. 요약하면 ‘왜 고추만 해? 고추는 원래 양성화가 되어 있잖아? 굉장히 트랜스젠더 배제적이군?’이라는 의견이었는데요. 모두 동의하진 않았지만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도 있었어요. 그래서 심사 위원을 조금 다양하게 구성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우인 작가 사인회는 제가 작가님께 제안해본 것인데, 레진코믹스에서 도움을 주셔서 아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어요.

Q: 퀴어 콘텐츠 제작자들과도 커넥션이 많이 생겼겠네요.

철희: 네, 입고해준 사람들은 좀 알고 있어요. 50팀 정도? 제가 살갑게 찾아가진 않아서 커뮤니티 같은 게 생기진 않았고. 그런 거 해도 좋겠어요. 햇빛서점 입고자 파티. 제가 정산 봉투 이렇게 들고 서 있고.(웃음) 서점의 책이 살아서 파티 하는 듯한 기분?(웃음) 저는 여기서 맨날 단체들을 책으로 만나니까. 신날 거 같아.

Q: ‘하이파이브’ 프로젝트 제안을 듣고서는 어떠셨어요?

철희: 솔직히 반갑진 않았어요. 서점 운영할 시간도 없는데 그냥 이 상태로 숨만 쉬게 놔두고 싶다는 의견이었고. 일단 지원을 받으면 뭔가를 해야 되잖아요. 그게 너무 부담됐어요. 도진 씨가 기운 내서 추진하려는 와중에 제가 옆에서 ‘나는 이것 때문에 못 할 거 같고 저것 때문에 못 할 거 같고’ 하니까 갈등도 있었고요. 지금은 열심히 하는 걸로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이전에 했던 지원 사업과는 조금 달라서 다행이었죠.

Q: 설득을 당하신 거네요?

철희: 네. 일단 서점 운영 정상화에 힘을 쏟고, 코디네이터 꼭 알아보려고요.

Q: 그러면, 하이파이브 안에서 할 것들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철희: 하나는 드랙 낭독회인데요. 미국의 몇몇 유치원에서 드랙퀸들을 초청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게 했다는 뉴스를 보았어요. 동화책 읽는 데 드랙퀸보다 적합한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어린이 대상으로 해보고 싶긴 하지만 이번 하이파이브에서는 성인을 위한 낭독회를 하기로 했어요. 이름은 ‘The library is open’. 다른 하나는 ‘책맞춤’이에요. 해외 서적 한 권과 국내 서적 한 권을 쌍으로 묶어 이달의 책으로 선정해서 집중 판매하는 아이디어예요. 두 권의 책을 일대일 대응이 아닌 재밌는 기획으로 조합할 생각이고요. 사진도 잘 찍어서 홍보물도 만들 거예요.

Q: 다른 팀들이 하는 프로젝트 중에서 기대되는 게 있나요?

철희: 일단 햇빛총서.(웃음) 꾸준히 낼 수 있게 되면 아주 좋겠어요. 가능하면 저도 좀 도와주고 싶어요. 그리고 소목장 세미 이벤트는 장터 같은 게 열리는 셈이니 동네 주민으로서 너무 좋아요. 워크스는 책과 관련된 걸 할 예정인데, 저랑 뭔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애초의 계획을 조금 변형해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그때 그때 붙는 접합점이 많을 것 같아요. 다함 씨는 좋은 파티를 열 것이고.(웃음) 이렇게 가까이 있는 다섯 팀이 한 번에 지원금을 받는 건 흔치 않아요. 예를 들어 ‘이번에 워크스 됐대’ 이런 게 아니라,(웃음) 다 같이 해서 정말 좋아요. 여기 되면 저기 안 되고 그러니까.

Q: 같은 판에 있다 보니.(웃음) 평소에는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받을 것 같아요.

철희: 맞아요. 보광동이 그런 게 많아요. 또, 두레처럼 서로 자주 도와주는 편이에요. 유리 씨는 뭐 도와주면 반지 만드는 것 가르쳐준다고 하고.(웃음)

Q: 많은 얘기를 들었네요. 감사해요. 연애 얘기 너무 많이 한 거 같은데. 서점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얘기도.(웃음)

철희: 맞아요.(웃음) 그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


Photo Copyright
⑶Byeonggon Shin, ⑻⑼Woojae Lee, ⑾⑿⒀⒁Kanghyuk Lee, ⑵⑷⑸⑹⑺⑽Chulhee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