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클스

2017.09.04

게이가 콘텐츠를 만들 때-이도진과의 대화


4년 전 여름. 갑작스레 일자리를 잃었다. 법대로 해보라는 말을 듣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집에 갔다. 내 무능을 자책하느라 시간을 다 썼다. 가끔 복수심에 불타올라 치밀한 계획을 세우다가 울었다. 또 뭘 했지? 기억이 안 나. 그리고는 얼마 뒤 한 사람의 편지를 읽었는데, 회사가 자신에게 내린 일방적인 해고에 대응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싸움을 정면으로 바라보겠다.” 편지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할 말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후 어쩌다보니 출판 일을 하게 됐고, 그의 이름이 더 자주 눈에 띄었다. 손이 가던 책의 디자이너로. 흥미로워 보이던 행사의 기획자로. 게이 매거진의 발행인으로. 그리고 어쩌다보니 이렇게 함께하게 됐네! 나는 ‘하이파이브’의 기록에 앞서 다섯 팀에게 각각 대화를 요청했는데, 이도진이 처음으로 그에 응했다. 프로젝트 전반을 개괄하기 위한 시간이었지만, 개인적인 궁금증도 해결하고자 했다. 우리는 2017년 7월 31일 프레클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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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기소개를 부탁해요.

도진: 86년생이고, 그래픽 디자이너인데, 지금은 그 정체성이 모호해요. 제 궤적을 보면 항상 다른 걸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1, 2년 단위로 방향을 바꿔온 것 같아요. 현재는 혼자 돈 안 되는 이상한 기획들을 하고 있어요. 주변 친구들의 필요와 나의 필요를 함께 채울 수 있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Q: 예전에 출판사 부당해고 공론화했을 때 도진 씨 이름을 처음 접했어요.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 같아요. 그 뒤로 어떤 일들을 진행해왔나요?

도진: 그 일이 있고서 한 일 년을 더 다녔습니다. 퇴사 후 지인과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렸는데,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저의 욕구가 컸어요. 흔히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관심사 위주로 진행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포트폴리오로 가져가곤 했으니까 저도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거죠. 게이 잡지를 만들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해왔는데요. 지금 파트너와 연애를 시작할 때 제가 던졌던 말이 “나 게이 잡지 만들 겁니다”였어요.(웃음) 이후 스튜디오를 시작하면서 잡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 거예요. 그게 «뒤로(DUIRO)»가 됐고요. 창간호 ‘The Military’에 대한 아이디어는 대충 갖고 있었어요. 한국 사회의 공고한 남성성, 남성 동성애자의 현실과 판타지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어요. 그에 이어 올해 동성혼을 다룬 ‘The Marriage’까지 발간했습니다.

저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책을 통해서 커뮤니티 내 창작자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기고했어요” “글 잘 봤습니다” 하는 식으로 이야기 나누는 걸 상상했던 거죠. 또한 이 책을 책장에 꽂아 놓는 행위가 누군가에게 대단한 일이고, 용기를 갖는 순간이 되는 걸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발행인과 독자와의 거리가 멀더라고요.(웃음) 웅덩이를 향해 조약돌을 던져도 그 파문은 개인의 영역에서 이는 것이라서 목격하기 쉽지 않았어요. 잡지를 만 권 정도 판다면 모를까 천 권 팔아서는 힘든 부분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조금 회의적인 지점인데요. 최근에는 새로운 모색의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Q: 시의성 있는 이슈를 민첩하게 다루는 잡지라고 해도 그런 괴리가 생기는 게 어쩌면 종이 매체의 한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진: 발행 비용이 싸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아닌 데다가 매번 돈이 들고. 그 부분에선 온라인 매체가 유리해요. 파급력도 있고. 그런데 책 천 권 만들어서 독자 천 명을 만나는 것과 유튜브에 영상 올려서 조회수 천을 찍는 것은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르잖아요? 매체가 다르면 내용도 다를 것이고, 그렇다면 종이 매체로는 다른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에 대한 방안으로 사진을 떠올렸지만, 딱히 좋은 답은 아닌 것 같기도 해요. 일단 한국 독자들에게 사진을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기 어렵죠. 당장은 이 책의 기획 화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늘려야겠다는 정도예요. 그리고 그걸 강화하는 방식으로서 재쇄를 찍지 않는 것.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대만 동성혼 법제화 관련 소식으로 편집부에서 혼인평권(婚姻平權) 숄더백을 다시 만들었거든요. 몇몇 분들이 “왜 회색으로 다시 안 만드냐” “지금 만드는 핑크색, 남색 별로다”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같은 걸 다시 만드는 방식은 «뒤로»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책과 굿즈를 만드는 건 동시대를 기록하는 하나의 방법이거든요. 돈이 된다고 똑같은 걸 재생산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 태도라면 창간호를 다시 찍어야 해요. 이런 고집이 주머니 사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출판이라는 게 발간 종수를 늘리며 고정 수입을 확보하는 거니까. 고민은 되지만, 어쨌든 흔히 말하는 소장용으로서의 책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Q: «뒤로»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요? 독자와 거리감을 느낀다고 했지만 그래도 돌아오는 목소리가 있었을 것 같은데.

도진: 접할 수 있는 방식이 SNS 정도인데요. 키워드 검색은 수시로 하지만 체크할 만한 게 많진 않았어요. 그나마 걸리는 사람들은 이미 관련 콘텐츠의 적극적 수용자였고요. 현재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84년생들이 그러한데요. 아이폰 3GS가 처음 출시됐을 때가 2009년 즈음인데, 그들이 막 경제 활동을 시작할 때였거든요. 데이팅 애플리케이션과 SNS를 활발하게 이용하면서 생긴 커넥션이 콘텐츠 구매력으로도 이어진 것 같아요. 여하튼 저는 84년생도 아니고 커뮤니티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던 터라 반응이 적었던 게 아닐까. 창간호 때는 좀 아쉬웠는데 지금은 딱히. 3호는 피드백이 더 많을 거예요. 내 자리에서 만들 수 있는 걸 만들면 누군가는 관심 가져주리라 생각하고요. 책 천 권 만들어서 다 팔았으면 됐죠 뭐.

Q: 1, 2호 다 재밌게 봤어요. 내용이 알차서 오래 두고 읽었어요. 특히 2호는 볼륨도 크고. 크레딧을 봤는데 컨트리뷰터 말고는 일한 사람이 편집장, 발행인, 끝.(웃음) 엄청 힘들었겠다 싶었죠.

도진: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결국 인건비가 늘어나는 건데 그걸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두 사람이 독박 쓴 거고. 저는 5개월 정도 다른 일들을 거의 포기했으니까요. 빚도 있어요.(웃음) 다른 사람들이 그 밀도의 책을 못 만드는 게 아니라 돈과 인력이 없어서 안 하는 거예요. 저는 그냥 저질러본 거죠. 삼천 권 정도 인쇄해서 다 팔면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규모는 여러모로 불가능하고요. 결국 뭐 하나를 줄여야 해요. 내용을 줄이거나, 제작비를 줄이거나, 인건비를 줄이거나. «버트(BUTT)»를 만들던 분들이 때가 되어 «판타스틱 맨(FANTASTIC MAN)» 만들게 되잖아요. 다시 말해, 한정된 상황에서 만들던 걸 그만두고 더 높은 단계로 진입한 건데요. 제가 만약 중철 책자 같은 걸 만들었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거예요. 주어진 상황 이상을 해내려니까 힘이 들긴 해요. 이 실험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Q: 앞서 사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화보가 다 너무 좋았어요.

도진: «보스토크(VOSTOK)» 편집장님이 지나가면서 그런 얘길했어요. 기획 화보를 찍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광고, 협찬이 아닌 기획은 전부 자비로 커버해야 하니까요. 2호 화보 중 하나인 ‹Pink Moon›의 경우, 모델 두 사람과 함께 명동 호텔에서 8시간 정도 촬영했는데, 이 규모에도 이백만 원 이상이 들어가요. 이 정도 리스크를 감당하는 게 참 쉽지 않아요. 기회비용을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성소수자 창작자가 콘텐츠를 어떤 식으로 생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이러한 시도가 다른 창작자들에게 용기가 된다는 점 때문에 계속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멋진 걸 만들어냈다는 경험이 커뮤니티에 번져나가는 것이죠. 때론 실수도 많이 해요. 포토그래퍼에게 인건비를 더 챙겨주고 싶어도 여유가 없었던 적도 많고요. 아쉬운 지점 투성입니다.

Q: 3호 기대하겠습니다.

도진: 돈이 없어요.(웃음)


   작은 틈을 메꿔 선을 만들면? 

Q: 여러 지점에 사례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누군가가 보고 용기를 얻길 바라는 점도 그렇고.

도진: 기획자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 아닐까요? 지금 어딘가에 작은 틈들이 있고, 그 틈을 메꿔 선을 만들면, ‘아 이게 그거구나’라는 흔적이 될 테죠. 그걸 통해 독자나 관객이 모일 거고요. 그런 분들이 주변에 있어서 저도 이런 것을 해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이 ‘하이파이브’라는 기획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런 지점과 연결된다고 느꼈어요. 요즘 고민은, 왜 그런 기획들은 하나같이 경제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까?(웃음)

Q: 모두 돈 많이 벌면 좋겠어요. 일단 저부터… ‘디너스레디’ 인터뷰에서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했어요. 그에 대한 계획이 있나요?

도진: 요새 유튜브를 진짜 많이 보는데요. 영상이 답인 것 같아요. 2012년 말에 싸이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6억 뷰를 돌파해서 화제였거든요. 몇 년 사이 20억 뷰가 넘는 게시물이 많아졌어요. 사람들이 영상 매체를 보는 방식이 확실히 달라진 것 같아요. 가수나 유명 유튜버 영상의 경우 1분이면 조회수가 천 회 정도 차요. 책 천 권을 생각하면 >현자타임<이 오는 거죠. 책의 장점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숫자라는 걸 무시하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온라인에서 무언가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아파트먼트’라는 사이트는 1년 동안 사이트에 입주할 사람을 구해요. 입주자가 자신의 공간에 자유롭게 이야기를 써나가는 방식이에요. 팀블로그나 미니홈피랑 뭐가 다를까 싶냐만 기획자의 존재가 그 색깔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이런 형태의 사이트를 계획 중입니다. «뒤로»에서 특정 주제에 관한 콘텐츠를 엮으려 노력했다면, 개인 층위의 사사로운 콘텐츠를 모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레즈비언 활동가가 일기를 올릴 수 있고, 게이 뮤지션이 음악을 추천할 수도 있고, 젠더퀴어가 화단을 가꾸는 이야기를 올릴 수도 있고. 다양한 사람들의 결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때때로 기획형 포스팅을 만들어도 좋겠고요.

Q: 좋은데요? 플랫폼과 플랫폼 사이에서 순환되는 게 있으면 강점일 것 같아요.

도진: 온라인 콘텐츠 중에서 좋은 것은 지면으로 옮길 수도 있겠죠. 텍스트는 온라인에 두고 종이 매체에서는 기획 화보 위주로 보여줄까 싶기도 해요. 앞서 이야기했듯 화보의 경쟁력은 더 고민할 지점이지만요.

Q: 평소에는 주로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나요?

도진: 활동적인 주변 친구들로부터 자극을 받습니다. 그 친구들과 함께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아나가는 거죠. 그리고… 유튜브?(웃음) 재밌어서 여러 채널을 구독하고 있긴 한데, 이 매체가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이 흥미로워요. 얼마 전 올리버라는 유튜버가 자기 친동생에게 커밍아웃하며 남자끼리 결혼하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는 영상이 있었거든요. 감동을 주는 전형적인 구조의 이야기였지만, 이런 방식이 많은 사람들을 쉽게 바꾸는 방법 같아요. 짧은 클립은 이젠 생활이에요. 과거에는 개인 방송이 소수 문화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모두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라이브 보는 것을 재밌어한단 말이에요. 송출자에겐 생각을 전달할 기회가 생기는 거죠. 그런 걸 보며 내 생각은 어떻게 전달할지 가늠하곤 해요.

Q: 작년 초만 해도 페리스코프 같은 게 과연 될까 싶었는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보고 있더라고요.

도진: 영상은 짧아도 그 안에 상황이 있잖아요. 한국에도 성소수자 유튜브 채널이 1~2년 사이에 많이 생겼는데, 아직은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구독자 많은 유튜버는 소속사, 피디, 편집자가 따로 있어요. 이런 걸 갖춘 성소수자 채널이 하나 정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가 본격적으로 유튜버를 하겠다고 하면 제가 붙어서 기획도 짜고 그럴 생각인데요. 하실래요?(웃음)


   햇빛 아래서 얻는 것들! 

Q: ‘프레클스’는 어떤 필요로 만들게 됐나요? 이름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도진: 햇빛서점을 먼저 언급해야겠네요. LGBT 문화 중에서도 특히 게이 문화는 주로 밤에 진행되는 편이에요. 그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고요. 오후 한두 시에도 산책 겸 갈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박철희 씨가 만든 것이 ‘햇빛서점’이에요. 서점을 열면 이런저런 활동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는데, 공간이 좁아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어요. 그러다 제가 스튜디오를 구하게 되면서 커뮤니티 공간으로 함께 쓰자고 제안해 이곳을 얻은 거예요. 이름을 지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철희 씨가 가진 주근깨예요. 제가 좋아하는 거였고, 햇빛 아래서 활동하면 얻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떠올리게 됐죠. 그렇게 해서 프레클스(Freckles)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점으로 이루어진 글씨로 아이덴티티를 만들었고, 무지개가 보이는 홀로그램 시트지를 사용해 유리창에 붙였어요.

Q: 이름이 맘에 들어요. 개구장이 같고. 언제 열었어요?

도진: 공간을 얻은 건 2016년 5월 말이었고, 전기와 조명 공사하고 오픈한 게 7월쯤이었어요. 그땐 책장도 없었고 소파 하나, 야자수 하나 있었어요. 야심차게 공간을 운영해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일이 있을 때마다 편하게 사용하는 유휴 공간 정도가 알맞다고 생각합니다.

Q: 유동적인 공간이 가장 필요하긴 하잖아요.

도진: 그렇긴 한데 사실상 운영하는 사람은 힘들죠. 임대료 압박이 있으니까. ‘여유’는 되게 비싼 단어잖아요.(웃음)

Q: 첫 이벤트는 어떤 것이었나요?

도진: «피넛 버터 프로젝트»는 창작자에게 주제에 따른 자유 작품을 요청하고 판매 금액을 성소수자 단체에 기부하는 프로젝트예요. 2호는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에 후원하게 됐는데,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의 사진을 이곳 프레클스에서 전시했어요. ‘영원한 여름(Eternal Summer)’이라는 제목으로 청소년기의 짧은 순간을 생각해보고자 하는 전시였죠. 동명의 대만 영화에서 그 이름을 따왔어요. 평균적으로 성정체성을 확립하는 나이가 13세 정도로 알려져 있거든요. 그 나이대 한국 청소년 평균 키를 알아보고 그 높이에 사진을 붙였어요. 성인 눈높이보다 아래에 있어서 살짝 무릎을 구부리거나 불편한 자세로 서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환기하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Q: 토크 프로그램도 열었죠?

도진: 도쿄 신주쿠 니초메에 ‘악타(Community Center Akta)’라는 일본 후생성 지원을 받는 HIV/AIDS 커뮤니티 센터가 있어요. 그곳에서 무가지를 내는데요. 발행 3주년 기념 전시를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한국에서도 하면 좋겠네요”라고 댓글을 달았다가 덜컥 진행하게 됐어요. 제가 해외 교류 일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말도 안 통하고 어려웠는데, «뒤로» 2호 편집장인 원대한 씨가 많이 도와줘서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었고요. 청년허브에서 전시 기금을 지원해주시긴 했는데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관계자를 한국으로 모셔올 여건은 안 됐거든요. 그런데 자비로 오신다고 해서 작은 토크까지 열었어요.

Q: 가장 최근엔 뭐 하셨어요?

도진: 드랙 워크숍을 도왔습니다. 모두 함께 드랙을 하고 퀴어문화축제에 가서 행진하는 걸 목표로 했고요. 마침 제가 어제 ‘여성, 괴물’에서 이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는데 참 좋았어요. 작년에 이 동네 친구들이 드랙 하는 걸 지켜보며 여러모로 좋은 점들이 있어서 이번에 햇빛학교 첫 수업으로 연 거예요. 트위터에서 박 터지게 싸우는 집단인 게이 남성과 이성애자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주말마다 한 공간에 모여서 연습한 것이죠. ‘여성성’과 ‘자기표현’이라는 고민을 함께 나눈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내 멋대로 하는 데서 오는 치유 효과가 좀 있더라고요. 이 수업을 계속 진행하고 싶어요.


   하이파이브, 우리 작은 연결 고리 

Q: ‘하이파이브’ 프로젝트는 어떻게 탄생한 거예요?

도진: 서울시 청년허브의 ‘청년활’ 기금을 받아 «뒤로» 2호를 만들었는데요. 청년허브 담당자분들과 연결 고리가 많이 생겼어요. 저희 활동을 보고 뭔가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2호 출간 이후에 연락을 받았어요. 공간 지원 사업을 진행하며 고민이 됐던 지점을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같이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다, 그렇게 먼저 제안을 주셔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청년허브 지원 사업 구조를 살펴보면, 먼저 ‘청년참’이라는 백만 원 정도의 기금이 있어요. 3명 이상의 청년들이 모여서 원하는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에요. 다음 단계가 천만 원 정도의 ‘청년활’이에요. 프로젝트 규모가 더 커지죠. 그다음이 5천만 원 규모의 공간 지원 사업인데, 작년에 처음 해보고 나서 아쉬운 지점이 있었나 봐요. 해결책을 모색하던 과정에서 이전과 달리 지역에 이미 공간들을 가지고 있고, 그 공간들 사이의 연결망이 있는 보광동을 발견한 거죠. 워크스, 햇빛서점, 프레클스, 소목장 세미, 박다함까지 총 다섯 팀인데요. 특정 공간이 아닌, 이들이 가진 관계망에 지원한 실험적 사업이 ‘하이파이브’라고 할 수 있어요.

Q: ‘하이파이브’가 지원 사업 파일럿 프로그램 제목이었던 거네요?

도진: 맞아요. 새로운 이름을 만들자는 말도 있었는데, 워크스가 ‘하이파이브’라는 이름이 너무 좋다는 거예요.(웃음) 워낙 브랜딩 감각이 넘치는 친구들이라서 저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지역도 참여하는 거였으면 애매할 수 있었겠지만 일단 저희만 하는 프로그램이니까. 만약 내년에 다른 팀들이 창신동에서 한다면 ‘창신동 하이파이브’가 될 수도 있겠죠.

Q: 자연스럽게 진행이 됐나요?

도진: 물론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죠. 햇빛서점, 프레클스, 워크스 세 팀이 최초로 제안받았고, 그러다 보니 각 팀이 원래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들을 끼워 넣은 구성이었어요. 이후에 제가 소목장 세미와 헬리콥터 레코즈를 끌어들였고, 큰 장소를 대관해서 다섯 팀이 함께 뭔가를 하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탁월한 아이디어였던 것 같아요. 애초의 계획이 오픈 스튜디오 같았다면 ‘하이파이브’는 새로운 느낌이라서 다들 기대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각 팀이 나름대로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어서, 비슷한 지점을 조망하고 있는 이들끼리 무언가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희망찬 바람이에요.

Q: 타이밍이 잘 맞았네요. 그러면 프레클스가 ‘하이파이브’ 안에서 계획하고 있는 이벤트들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도진: 크게 세 가지인데요. 하나는 ‘햇빛총서’ 1호 발간입니다. «뒤로»가 군대나 결혼이라는 큰 키워드를 주제 삼아 관련 이슈를 폭넓게 모은다면, 햇빛총서에서는 작은 주제로 들어가서 집중적으로 살피려고 해요. 한두 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작은 책으로 발행할 생각입니다. 1호는 종교와 성소수자의 문제를 다루는데, 대관할 공간에서 작업에 참여하신 분들 모시고 이야기 나누는 정도로 발간회도 열 거예요. 같이 예배를 드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웃음)

Q: 으하하.

도진: 또 하나는, 소목장 세미와 함께 진행하는 쿠보탄 클래스예요. 호신 무기의 일종인 쿠보탄을 함께 만들어보고, 공간이 허락되니 시연을 할 수도 있겠고요. 페미니즘 이슈를 펼치려는 팀도 있으니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은 여성성에 관한 사진전이에요. 공간 안에 작은 기획들을 분절해서 다양하게 배치하려는 계획이 있어요.

Q: 프로젝트 안에서 다른 팀들과 협업하는 구조가 재밌어요. 하이파이브 ‘짝!’ 느낌으로.

도진: 혼자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제가 이십 대 초중반에 그런 외로움을 너무 많이 느꼈어요. 물론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한 부분이었는데, 그런 게 작업할 때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혼자 하는 작업이 되게 싫고 힘들어서 항상 누군가와 같이 하고 싶었거든요. 저한테는 그게 자연스러워요. 합이 잘 맞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서 다행입니다.

Q: 마지막으로, ‘하이파이브’를 통해서 기대하는 게 있다면?

도진: 음… 창작자들 사이에는 생존과 막연함에 대한 두려움이 떠다니죠. 그로 인해 자칫 염세적인 태도가 될 때도 있어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한 줌의 신(scene) 안에서 그런 태도는 쉽게 전염되기도 하거든요. 저는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어요. 한편으로는, 성공에 유효한 자본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제 안에 그 욕망이 없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런 걸 마주하면 씁쓸하죠. 가능하지 않으니까. 그때마다 주변 친구들에게서 큰 힘을 얻었어요. 워크스, 소목장 세미, 박다함… 그들이 하는 일과 말과 행동에서 편안함과 자유를 느꼈던 것 같아요. 자신의 존재를 자신이 하는 일로 증명하는 사람들이고 그렇기에 계속 지켜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죠. 때때로 뭔가를 같이 해오긴 했지만, 기회가 생겨서 모두 한군데로 불러 모았다는 걸로 큰 바람을 성사한 듯해요. 싸워서 서로 안 보는 사이가 생길 수도 있지만요.(웃음) 분명히 각자가 나름대로 느끼는 구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록으로 잘 남겨두고 싶었어요. 참여자 누구라도 ‘이런 게 있었지’ 하며 쉽게 찾아볼 수 있게. 이 시대 이후의 창작자들과의 작은 연결 고리로 작용한다면 더 좋겠네요. 그 정도만 되어도 완전 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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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Kanghyuk Lee, ⑶AVEC, ⑷HXO, ⑵⑸⑹⑺⑻⑼⑽Dozen Lee